◇ 국경을 넘으면 같은 약도 다른 법을 만난다
캐리어 속 익숙한 약봉지, 공항에서 다른 이름을 얻는다
유학을 앞둔 한 학생이 짐을 챙긴다. 오랫동안 먹어온 약도 함께 넣는다. 본국 병원에서 정식으로 처방받은 약이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일 수도 있다. 불면증 때문에 먹는 CBD(칸나비디올, 대마에서 뽑아낸 성분) 오일일 수도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짐이 엑스레이를 통과한다. 세관 직원이 가방을 다시 열어보자고 한다. 몇 분 전까지 평범한 유학생이었던 사람이, 어느새 마약수사대 조사실 의자에 앉아 있다.
이런 일은 드문 사고가 아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국경 단계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767건, 1,007kg에 이른다. 특히 여행자를 통한 반입 적발이 크게 늘었고, 국내에 머무는 외국인과 외국인 근로자를 통한 유입도 늘어나는 추세다. 본국에서는 아무 문제 없던 약이,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범죄의 증거물로 바뀐다.
◇ 위험해서가 아니라, 분류가 달라서 문제가 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착각한다. "성분이 안전하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다르다. 한국 법은 성분의 위험성이 아니라, 그 성분을 어떻게 분류했는지로 처벌 여부를 정한다.
CBD가 대표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마초의 어느 부위에서 뽑았든, THC(환각 성분)가 없다고 광고해도, CBD 오일은 원칙적으로 마약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한국 법에서 마약류가 아닌 것은 오직 껍질을 완전히 벗긴 대마 씨앗과 그 기름뿐이다. 홈쇼핑에서 파는 헴프씨드오일과, 해외 직구로 들여오는 CBD 오일은 전혀 다른 물건으로 취급된다.
ADHD 치료제도 마찬가지다. 애더럴(암페타민 성분 치료제)은 미국에서 흔히 처방되지만, 한국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뇌와 신경에 작용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 판매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본국 처방전이 있어도 그 자체로는 정당한 반입 사유가 되지 못한다. 졸피뎀, 디아제팜, 알프라졸람 같은 수면제·신경안정제 성분도 같은 이유로 마약류에 포함된다.
◇ 핵심은 그 약이 위험한지가 아니라, 한국 법이 그 성분을 어떻게 분류했는지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 반입승인이라는 절차
여기서 두 번째 착각이 등장한다. "그럼 아예 가져올 방법이 없다는 거냐"는 생각이다.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자가치료 목적의 마약류 반입승인 제도를 운영한다. 국적과 관계없이,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이라면 사전 승인을 받아 휴대하고 입국할 수 있다.
항공권 사본과 의사의 진단서, 처방전을 갖추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처리에는 통상 열흘 정도 걸리므로, 입국 예정일보다 최소 열흘 전에는 신청해야 한다.
다만 승인받은 양을 넘겨서는 안 된다. 국제우편이나 소포로 부치는 방법은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별도로 금지된다. 반드시 본인이 직접 휴대하고 입국해야 한다.
◇ 적발되면 이런 절차를 거친다
승인 없이 반입하다 걸리면, 절차는 이렇게 흘러간다. 세관에서 먼저 물품을 확인한다. 마약류 성분이 확인되면 사건은 경찰 마약수사대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서 소변검사와 모발검사를 받는다. 간이시약검사를 먼저 하고, 필요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정을 의뢰한다. 검사를 거부해도 영장을 받아 강제로 진행할 수 있다.
이후 진술 조사가 이어지고, 사건은 검찰로 넘어간다. 검찰은 사안에 따라 기소유예(재판 없이 사건을 끝내는 결정), 약식기소, 정식기소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약물에 대한 의존이 문제의 본질이라면,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교육이나 치료 이수를 조건으로 하는 기소유예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두 가지 권리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진술거부권(조사받을 때 말하지 않을 권리)이다. 다른 하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다. 한국어가 서툴다면 통역 지원을 요청할 권리도 있다. 조사 초반에 이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이 좋다.
◇ 인정할 것인가, 부인할 것인가 - 이분법이 아니다
여기서 흔히 하는 착각이 하나 더 있다. "일단 다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면 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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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15] - 본국의 약이, 한국에선 마약이 된다 - K유학다문
[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15] 본국의 약이, 한국에선 마약이 된다 ◇ 국경을 넘으면 같은 약도 다른 법을 만난다캐리어 속 익숙한 약봉지, 공항에서 다른 이름을 얻는다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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